• 수도 : 파리
  • 위치 : 서부유럽
  • 면적 : 674,843 평방 KM
  • 정체 : 공화제
  • 종교 : 로마가톨릭 83-88%, 이슬람 5-10% 개신교 2%, 유대교 1%, 기타 4%
  • 인종 : 켈트족, 라틴족, 슬라브족, 북아프리카인, 인도차이나인 등
  • 언어 : 프랑스어
  • 화폐단위 : 유로화(Euro)
  • 시차 : 한국과의 시차는 8시간 (한국 08:00 터키00:00), 여름에는 summer time 실시로 7시간 이곳이 느리다.
파리

교외를 포함한 ‘파리 데파르트망(Department)’은 면적 2,844㎢, 인구 약 1,041만 명(2009)이다. 오랫동안 센 데파르트망의 수도였으나 1964년부터 파리만으로 독립 데파르트망이 되었다. 프랑스의 정치·경제·교통·학술·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고 불리며 프랑스 사람들은 스스로 ‘빛의 도시’라고 부른다.

세계의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여 몹시 좁은 편에 속하지만 둘레 36km의 환상도로(옛 성벽 자취)에 둘러싸인 부분이 1860년 이래의 파리 시가지이다. 그러나 프랑스 전체의 0.25%에 이르는 면적에 전인구의 약 6분의 1이 집중해 있는 ‘대파리’는 해마다 10만∼15만 명씩 인구가 불어나고 있다. 재정지출이나 상업거래량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수도 집중현상’은 프랑스의 특징 중 하나다.

센강(江)이 남동쪽에서 시가지로 들어와 생루이섬과 시테섬을 감싸면서 북쪽으로 크게 만곡을 이룬 다음 남서쪽을 거쳐 시외로 흘러나간다. 따라서 동쪽으로는 뱅센 숲, 서쪽으로는 불로뉴 삼림공원이 이어진다. 센강의 남쪽을 ‘좌안(左岸:리브고슈)’, 북쪽의 보다 넓은 지역을 ‘우안(右岸:리브드루아트)’이라고 부르며, 시 주변에는 로마의 ‘일곱 언덕’을 연상시키는 언덕이 줄지어 솟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리 [Paris]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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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방 전교회

주로 아시아 지역 선교를 목적으로 1653년 로마 교황청이 프랑스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창설한 가톨릭 포교 단체이다.
이 단체는 아시아 각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선교사들은 파견 지역에서 평생토록 선교에 종사하면서 인근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직자 자질이 있는 사람을 선발, 그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선교 방식을 취하였다.
따라서 회원은 수도서원(修道誓願)을 하지 않은 재속사제(在俗司祭)로 이루어졌으며, 포교지에서 3년간 시수(試修)를 마친 뒤 평생을 아시아 포교에 종사하겠다는 서약을 해야만 비로소 입회할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가톨릭 전교에도 선구적 역할을 수행, 1831년 브뤼에르 주교가 처음으로 한국 선교를 자임하고 부임하던 중 사망한 이래 L.J.M.앵베르, J.H.샤스탕, 페레올 신부 등이 잇따라 파견되어 순교와 박해의 고난을 겪으면서 한국 가톨릭의 기반을 다졌다.
선교 3세기 동안 동양에 4천여 명의 회원들을 파견 전교하였으며, 그 가운데 160여 명이 순교의 피를 흘렸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이 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고 동양 전교지방의 성물과 활동상황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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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메달 성당

카타리나 라부레는 파리의 뤼뒤박에 있는 수련소에서 카타리나라는 수도명으로 수도생활을 하던 중 1830년 7월 18일과 19일 밤에 성모 발현을 체험하였다. 이어서 1830년 11월 27일 대림 첫 주일 전날인 토요일 저녁과 1831년 9월에도 성모 발현이 있었다. 특히 두번째 발현 때에 성모님께서는 메달 제작을 부탁하며 “이 메달을 지니는 사람들은 커다란 은총을 받을 것이다. 그 은총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내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라부레 수녀는 이 사실을 지도 신부인 알라델 신부에게 이야기하였고, 알라델 신부는 이 모든 상황을 파리의 켈랑 대주교에게 보고하였다. 켈랑 대주교는 메달 제작이 신앙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허락했다. 1832년 6월 30일 최초의 메달이 주조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기적의 메달’이다. 1836년에는 라부레 수녀의 환시(幻視)가 대주교가 임명한 특별위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라부레 수녀는 1830년 7월 처음 성모 발현을 체험한 후, 이듬해 1월부터 파리에 있는 한 양로원에서 46년 동안 노인들을 돌보며 지내다가 1876년 10월 31일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후 57년이 지난 1933년 5월 28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고, 1947년 7월 2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녀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은 채 현재 파리의 뤼뒤박에 위치한 기적의 메달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라부레 성녀의 순결한 영혼의 노력을 하느님은 부패되지 않는 시신으로 보답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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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 예수 성심 성당

몽마르뜨 언덕은 우리에게는 예술인들에게 자유로운 언덕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언덕은 일찍이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파리 최초의 주교인 디오니시오 성인이 순교하였다(몽마르뜨는 순교자의 산이란 뜻이다).

1910년에 몽마르뜨 언덕의 정상에 지어진 이 예수성심 성당은 몽마르트 성당이라고도 한다. 파리 최초의 주교인 디오니시오 성인(St-Denis-쌩드니)이 이 언덕 밑에서 순교한 이래 이곳은 순교자들의 산이란 뜻으로 몽데 마르띠르(Mont des Martyrs)라고 불리다가 차츰 변형되어 몽마르뜨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통용되게 되었다고 한다. 몽마르뜨르 언덕의 정상에 위엄있게 서 있는 이 예수성심 성당은 인상적인 조각, 그림, 모자이크 장식 등이 참으로 정교하며, 천정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성당에는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도록 성체가 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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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

센강(江) 시테섬에 있는 성당이다. 공사는 1163년 주교 M.쉴리의 지휘 아래 내진(內陣) 건축이 시작되었고, 성왕 루이 치하인 13세기 중엽에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 측면 제실(祭室)의 증설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어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늑골교차궁륭(肋骨交差穹窿)으로 덮인 길이 약 130m의 장대한 신랑(身廊)을 중심으로 하는 오낭식(五廊式)의 웅대한 건축으로, 신랑 양측의 열주(列柱)·트리포리움(명층 아래 연이은 층)·명층(明層:높은 창)으로 된 명쾌한 3층 구성에서 그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단정한 서쪽 정면에는 최하층에 《최후의 심판》의 부조로 유명한 중앙 출입문 등 3개의 출입구가 있으며 여기에서 《제왕의 상》이 늘어선 가로가 긴 중간대를 거쳐 스테인드 글라스를 본뜬 지름 9.6m 장미의 창을 중심으로 하는 층, 열주로 구성된 그랜드 갤러리가 잇달리고, 그 위에 지상 6.9m 높이의 직사각형 쌍탑이 얹혀 있다.힘차게 활 모양을 그린 다수의 비량(飛樑)으로 지탱된 남북의 측면에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명층이 줄을 잇고, 중앙 부근에 돌출한 익랑(翼廊) 끝 부분에는 지름이 13m나 되는 유명한 장미의 창과 아름다운 조각을 볼 수 있다. 익랑과 신랑의 교차부에 치솟은 첨탑(尖塔)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또한 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미사(1944.8.26)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