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 : 앙카라
  • 위치 : 유럽의 동남쪽, 아시아의 남서쪽, 흑해 연안
  • 면적 : 783,562 평방 KM
  • 정체 : 공화제
  • 종교 : 이슬람 99.8%, 기타 0.2%
  • 인종 : 터키인 72-75%, 쿠르드인 18%, 기타 7-12%
  • 언어 : 터키어
  • 화폐단위 : 터키리라(TL)
  • 시차 :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한국 07:00 터키00:00), 여름에는 summer time 실시로 6시간 이곳이 느리다.

정식명칭은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이다. 동쪽으로 이란·아르메니아·조지아(그루지야), 남쪽으로 이라크·시리아, 북서쪽으로 불가리아·그리스와 국경을 접하고, 북쪽으로 흑해, 남쪽으로 지중해, 서쪽으로 에게해(海)·마르마라해에 면한다.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 전부와 보스포루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마르마라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의 발칸 반도, 동(東)트라키아 지방에 걸쳐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적 위치로 인해 역사적으로 동방과 서방의 문화를 연결하는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이런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역사적인 부침이 심했다.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의 후계를 잇는 국가로 18세기에 오스만 왕국이 쇠퇴하여 다른 나라에 분리 점령되거나 통치, 관할되었고 20세기 들어 터키공화국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에게해에서 그리스와 해역·상공·영토에 관련된 분쟁을 벌이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터키인이지만 1984년부터는 터키 동쪽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族)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터키 정부를 상대로 유혈투쟁을 벌여왔고 최근에도 그들의 독립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행정구역은 81개주(il)로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터키 [Turkey] (두산백과)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라고스(Lagos)로 고대 그리스 땅에 살던 메가라(Megara)인 비자스(Byzas)가 지금의 이스탄불의 세라글리오 포인트1) 지역에 정착하여, BC 660년 비잔티온(Byzantion) 도시를 세웠다.

330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온으로 옮기고 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개명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2)의 제7대 술탄 메메트 2세(Sultan Mehmet II)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또한 오스만 황제들에 의해 발전되고,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의 남쪽 입구에 있는데 보스포루스 해협과 골든 혼(Golden Horn) 해협 주변에는 많은 이슬람 사원이 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의 수도가 앙카라(Ankara)로 정해진 후에는 이스탄불이 금융, 산업 및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스탄불 구도시 지역은 1985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3)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스탄불 [Istanbul] (터키 개황, 2012. 1.,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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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사원 (Aya Sophia Museum)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제국의 가톨릭 성당으로 오랜 시일이 경과되었음에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건축학상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초의 건물은 360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에 의해서 건립되었으나 후에 소실되었다. 현재 건물은 537년 유스티아누스 대제(Justinianus I)에 의해서 건립된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은 15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56m 높이의 거대한 중앙 돔과 많은 보조 돔을 갖고 있다. 거대한 중앙 돔은 다시 4개의 소형 돔으로 연결됨으로써, 비잔틴 건축물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후일 이 건축물은 이슬람 세계에 영향을 미쳐 이스탄불(Istanbul) 이슬람 사원들에서 볼 수 있는 비잔틴-이슬람 문화의 융화라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낳게 했다.성 소피아 성당은 537년부터 1452년까지 916년 동안은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1453년 오스만 터키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점령 후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477년 동안 사용되었다. 1930년~1935년 케말 파샤(Kemal Pasha)에 의해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건물 내에는 초기 기독교 성화 및 이슬람교 장식물이 공존해 있어 동-서, 기독교-이슬람 문화의 접촉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성당 밖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할 때 추가된 4개의 첨탑이 시대에 따라 각기 형태를 달리하면서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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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카프 궁전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가 건설을 시작해 1467년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되었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평지에 위치한다. 톱카프는 ‘대포 문’을 뜻하는데 과거 해협 쪽에 대포가 놓여 있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오스만제국 때 세워진 톱카프 궁전은 단순한 왕족의 거처가 아니라 술탄과 중신들이 회의를 열어 국가 정치를 논하던 장소였다. 당시 궁전에 거주하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만 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궁전 내부는 정원 4개와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400여 년 동안 계속된 증·개축으로 오스만 건축 양식의 변화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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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블루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이 세운 가장 장려한 건축물 중 하나이며, 여섯 개의 미나레트와 여러 개의 돔과 반원형 돔은 아직도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있다. 이 건물은 내부의 색채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고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실 정식 이름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이다. 이는 건축을 명한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블루 모스크는 오스만인들이 1453년 비잔틴으로부터 빼앗은 이스탄불의 예전 중심지에 1609년에서 1616년까지 세워졌다. 아야 소피아(하기아 소피아)에서 정확하게 맞은편에 있다.
조각된 대리석 민바르(설교단)는 모스크 안 어느 곳에 있어도 이맘(이슬람교 성직자)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모스크의 중앙 돔은 직경 33m이며, 높이는 43m이다. 내부에는 꽃, 나무, 추상적인 패턴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즈니크에서 가져온 2만 개가 넘는 수공예 도자기 타일들이 늘어서 있다. 200개 이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일광이 내부로 넘쳐든다. 아메드 1세는 모스크가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으며, 모스크 벽 바로 외부에 있는 마우솔레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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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물 저장고(Yerebatan Sarayi)

터키어()로 ‘지하궁전’이라는 뜻으로,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수백 개의 고대 저수조 중에서 가장 큰 저수조이다. 이스탄불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었던 6세기에,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의 부족한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아야 소피아(세인트 소피아성당) 옆 지하에 건설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교회당과 저수조를 한 장소에 지었는데, 점차 물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황제가 저수조 규모를 확장하고 교회당과 합칠 것을 명했다고 한다. 1968년 균열된 부분과 기둥들을 수리·보수하였고 1985년 이스탄불메트로폴리턴박물관이 대대적으로 복원한 끝에 1987년 9월 9일부터 공개하기 시작했다.
길이 143m, 너비 65m의 거대한 지하 저수조로 4m 간격으로 높이 8m의 기둥들이 있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북쪽 19km 지점의 벨그라데 숲(Belgrade Woods)에 있는 강물과 지하수를 수도관을 통해 끌어와 모아놓는 구조였는데, 저장량이 8,000톤에 달한다. 지하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나무 통로가 만들어져 있고 동굴 가장 안쪽에는 메두사의 조각상이 거꾸로 세워져 있다. 가장 큰 공간은 높이 9m의 대리석 기둥 336개가 모여 있는 곳으로 기둥들이 28개씩 12열로 서 있다. 저수조는 두께 4m의 내화()벽돌로 둘러싸였으며 방수를 위해 특수 모르타르로 마감되었다.

카파도키아 (Cappadocia)

앙카라에서 동남부쪽으로 3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소아시아 반도 중앙고원에 위치하며 오랜 옛날 이 지방에서 가장 높은 에르지에스산(3,914m)의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바람의 풍화작용 등으로 깎여나가 이런 특이한 모양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약 250년 동안 이곳으로 피신 은둔하였다. 그들은 이곳의 자연을 이용하여 지하도시를 건설하여 기도하는 곳, 동굴교회, 주택, 학교 등을 만들어 생활하였으며 그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교회가 타락해가자 초대 교회의 신앙을 따르던 수도사들이 이곳에 와서 수도원을 건설, 경건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이슬람교인들의 침략으로 또 다시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찾았고 비잔틴 시대에는 성황파 신앙인들의 은둔처가 되기도 하였다.

이즈미르

이스탄불의 남서쪽 336km, 에게해(海)에 면한 터키 제3의 대도시로 예전에는 스미르나라고 불렀다(요한 묵시록의 7교회 중 하나).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이며 BC 627년 리디아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BC 3세기에 재건되어 로마시대까지 번영하였다. 중세 비잔틴·십자군·아랍·투르크 간에 쟁탈이 거듭되었으나 그리스 문화의 한 중심으로 그리스상인에 의하여 무역이 성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이 지방에 침입한 그리스군(軍)에 의해서 파괴되고 그리스령이 되었으나 1923년 터키에게 반환되었다. 주변일대에 곡물·목화·올리브·야채·잎담배·과실과, 견직·양탄자를 생산하는 배후지(背後地)를 끼고 있는데다가 비누·면직물·염색공업이 활발하여 상공업 중심지이다.

또한, 제1의 수출무역항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도시에는 2개의 철도역이 있으며 북쪽과 남동쪽으로부터의 철도종점이 되고 있다. 이스탄불과는 국내항공이 통하고 있으며 아테네로 연장 서비스도 하고 있다. 고대의 아고라에서 대리석의 열주(列柱), 포세이돈과 데메테르의 상(像) 등이 발굴되었고, 파구스의 언덕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장(武將)이 축조한 성새가 있다. 국립도서관·에게대학 등이 있고, 호메로스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파묵칼레

지면에서 나오는 석탄 성분을 포함한 섭씨 35도 온천수가 100미터 높이에서 산표면을 흘러나와 많은 수영장을 만들고 있다. 이 곳은 심장병, 순환기 질환, 고혈압, 신경성 장애, 류머티스, 눈과 피부의 질병, 신경과 육체의 피로, 소화기 질병, 영양 장애에 효능이 있는 온천이 풍부하게 솟아 나오고 있다.

성모님의 집

성모 마리아의 집은 예수가 죽은 지 4~6년 후부터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의 여생을 돌보며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1세기에 사도 요한이 이곳에 성모 마리아를 위한 집을 지었고, 4세기에 폐허가 된 집터에 십자 모양에 돔 구조의 예배당이 지어졌는데 이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최초의 바실리카이다.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낸 소재지에 대해서는 에페수스와 예루살렘의 두 가지 설이 전해왔다. 1881년 이곳에서 유적이 처음 발견된 뒤 1896년 교황 레오 13세가 성모 마리아의 선종() 장소로 인정하였고, 1961년에는 교황 요한 23세가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공식 인정하고 성지()로 선포하였다. 이곳은 가톨릭 신자들의 중요한 성지 순례 코스일 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도들의 성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