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로마시의 발전 약사 개관

기원전 116에서 기원전 27년까지 살았던 레아토 지방의 박식한 사학자 바로네에 의하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 로물루스와 그 휘하의 목동들에 의해서 팔라띠노 언덕에 건국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점차적으로 깜삐돌리오 언덕, 뀌리날레, 비미날레, 에스뀔리노, 첼리오, 아벤티노언덕으로 첫 집단이 옮겨 살게 되면서 테베레강의 왼쪽에 있는 일곱 언덕이 로마시의 중심 거주지가 되었다.

왕정시대인 기원전 753년 – 510년
로마는 사비니, 휘데나티, 베이엔티, 라띠니, 에뚜루리아족을 차례로 정복하여 라찌오 지방으로 영토를 확대하였다.

공화정 시대인 기원전 510년 – 29년
이탈리아 반도의 에꾸이, 볼스끼, 에뚜루리아, 갈리, 산띠니, 띠렌띠니족을 항복시키고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까지 계속된 전쟁으로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의 강력한 도시국가 카르타고를 격퇴시킴으로써 이탈리아 반도가 평정되었다. 또 스페인, 일리리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소아시아 지방도 정복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갈리아 지방도 정복함으로써 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23군데 칼을 맞고 암살당하였다.

제정시대인 기원전 29년 – 기원후 476년
기원후 2세기까지는 로마제국의 최고 번성기로 특징지워지며, 마우리타니아, 부리타니아, 후리시아, 다치아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3세기부터는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고 끝내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보게 되었다.

중세시대인 기원후 477년 – 1400년
493년 – 553년 고트족에 의한 이탈리아 반도 지배 시대로 로마주교는 이시기에 엄청난 영향력을 확장한 시기이다.
536년 – 553년 고트족과 비잔티움과의 전쟁이 있었으며,
568년 – 774년 롬바르드족에 의한 이탈리아 반도 지배 시대이다.
728년 롬바르드와 류트프란드가 순교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를 위해 수뜨리의 성을 기증함으로써 교황들의 세속권의 시대를 열게 되었고, 756년 프랑크 왕국의 피핀 대제는 롬바르드족과 비잔티움으로부터 이탈리아 반도를 수복하여 이 영토를 교황에게 증정하게 됨으로써 로마 공국영토, 동로마제국, 로마 태수 영토를 포함시킨 교회국가가 출현하였다.
774년 샤를르마뉴에 의해 롬바르드족이 패배하였고, 800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샤를르마뉴가 서유럽 지역의 대부분을 세력하에 둔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로 선포되어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1300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의해 제1회 성년이 선포되었고, 1309년 프랑스 아비뇽으로 교황청이 이전되었다. 1377년 로마의 중요성과 세력은 쇠퇴하게 되었으며 인구가 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르네상스 시대라 불리는 15세기- 17세기
교황들에 의해 로마의 영광을 되찾은 시기이며, 예술활동을 장려하여 문예부흥이 일어난 시기이다.
브라만테(1444-1541),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 등의 예술가들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문예부흥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새로운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고,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르네상스 건축의 극치를 이루는 새로운 성 베드로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1600년도 로마에서 베르니니(1598- 1680)를 중심으로 바로크 양식의 절정을 이룩하였다.

이탈리아의 국가 통일과 현재
로마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로 선포되고 교황청 속권 시대가 끝나게 되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의 무대가 되었으며 로마제국의 영광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에우르에 신로마 구역을 비롯하여 로마제국풍의 대리석을 주제로 한 웅장하고 과장된 건물들이 건축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시에 로마는 무방비 도시로 선포했으며, 이탈리아 각 지방에서 수많은 피난민들이 특전을 이용하려고 쇄도하였다.
대전이 끝나면서 이중의 많은 사람들이 남아 로마시민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약 500만의 인구를 이루고 있다.

null

성 요한 라떼란 대성당

유일한 구원자 그리스도

성 요한 라떼란 대성당은 로마의 대주교좌성당이며 모든 교회의 어머니 교회인 동시에 교황 성하의 주교좌성당이기도 하다. 세례당은 주님의 최후의 만찬의 식탁에서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태어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세례자 성 요한의 말을 기억하도록 한다. “참회하고 회개하시오.” 이 말이야말로 희년의 강한 요구인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제시하며 우리에게 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시하고 있다. 복음사가 성 요한은 자신의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을 통한 친밀감에 입각하여 쓴 기록들을 매개체로 하여 우리들을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한다.

null

성모마리아 대성당

예수님의 삶과 온전히 함께하셨던 성모님

성모 설지전 대성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신앙과 사랑, 신뢰와 자비심, 눈물과 충만한 기쁨의 확실한 장소로 드러난다. 이러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성모님과 우리 각자와의 관계는 깊이가 있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문학은 성모님에 대해 기도와 시, 멜로디와 상당한 수준의 예술로 승화하여 표현하였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 삶의 발걸음에 발맞춰 함께 가시며, 우리들의 가정과 노동에 참여하실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당신 아들 예수님을 품에 안아 주시듯이 꼭 안아 주시기 때문이다

null

성 바오로 대성당

교회 선교의 장, 선교의 수호성인 성 바오로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성인의 성당은 사도직과 교회 안에서의 선교 사명, 사도적 봉사 안에서 드러나는 자비와 교회일치에 대한 위대한 이상(理想)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바오로 사도는 위대한 회개자였고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의 스승이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희망이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12장과 15장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바오로 사도 자신의 모든 고된 사도직 수행은 이교도들이 복음을 알고 그리스도께로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처럼 완전하고 영적인 희생으로 봉헌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 바오로 대성당을 찾는 것은 개별적인 회개와 모든 민족들과 교회의 일치를 성령께 구하는 목적으로 지향되어야 할 것이다.

null

예루살렘 성 십자가 성당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곳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Nos autem gloriari oportet in Cruce Domini Nostri Iesu Christi)”.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탁월한 표시로써, 교회의 중심에, 모든 참회 여정의 전과 후에, 모든 순례의 길과 모든 거룩한 행렬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구원을 발견한다.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대성당은 성년이 되면, 모든 것을 드러내는 곳이다.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이 들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렇기에 순례의 여정도 또한 우리들의 희생들을 봉헌하는 참회이다. 이곳 성당에서의 참회의 전례예절은 하나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