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 : 카이로
  • 위치 :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
  • 면적 : 1,004,450 평방 KM
  • 정체 : 공화제
  • 종교 : 이슬람 90%, 곱트교회 9% 그리스도교 1%
  • 인종 : 이집트인 99.6% 기타 0.4%
  • 언어 : 아랍어
  • 화폐단위 : 이집트파운드
  • 시차 :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한국 07:00 이집트00:00), 여름에는 summer time 실시로 6시간 이곳이 느리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민족의 피난처이면서, 아기 예수께서 헤로데를 피하기 위한 피난처로 사용된 땅이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야곱의 가족이 가뭄을 피해 갔던 땅이자 예레미야가 피해 갔던 땅이다.
날씨는 알렉산드리아 등 지중해 연안은 온화한 지중해성성 기후이지만 이집트 영토 대부분은 건조기후이다.
겨울인 12월∼2월에는 가끔 비가 내리지만 3월∼5월은 열풍 과 모래 폭풍이 있어 여행에 불편하다. 6월∼9월은 무더운 날씨로 사막은 낮에 37도∼48도정도이다.
화폐 단위는 이집트 파운드, 피아스타, 밀림이 있으나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숫자가 없어 액수를 알려 주어도 알기 어려운 편이다. 이 지역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하며 주요 기관에서는 영어를 충분히 구사한다. 이집트의 공휴일은 금요일이고 이날이 그들의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부터 금요일 일몰까지는 모든 관공서와 상가가 문을 닫는다.

시나이산

페이란 오아시스를 지나면 해발 2,285m의 시나이산이 있고 그 옆에 가타리나 산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아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돌산’이다. 사나이산은 산의 아름다움보다 하느님의 현존하심에 있어서 의미가 큰 산이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오늘날 시나이산으로 추측되고 있는 호렙산에서 가시나무 떨기 속의 불꽃을 보고 다가가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모세는 여기서 출애굽의 사명을 받았고 또 여기서 십계명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는 이를 ‘거룩한 산’으로 여긴다.

가타리나 수도원

시나이산 북쪽 아드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이 수도원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시나이산을 순례하고서 기념경당을 하나 짓도록 하여 342년에 세워진 것이 그 모체가 되었다.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수도원 건물과 성당은 530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건립된 것이다. 수도원 내에는 세계 최고의 걸작인 모자이크 작품과, 3,000점 이상의 고대 성경 사본, 5,000권 이상의 희귀한 성경들이 바티칸 교황청 도서관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이 소 장하고 있는 곳이다.

카이로

나일강(江) 삼각주의 남단에서 약 25km 남쪽 나일강 우안에 있다. 시가는 하중도(河中島)인 게지라섬에서 강의 좌안까지 펼쳐지며 아랍권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1월 평균기온 12.7℃, 8월 평균기온 27.7℃, 연평균강수량 25mm이다. 카이로라는 이름은 969년부터 불렸으나 도시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는 현재의 카이로 남쪽 교외, 나일강 좌안에 해당하며, 로마·비잔틴 시대에 형성되었다. 바빌론이라고 하던 도시는 지금의 구(舊)카이로(Old Cairo:Misr al Atika)에 있었다. 또한 아랍인이 이집트를 정복하였을 때 정복자 아므르 이븐 알아스가 바빌론의 동쪽 가까이에 새로운 도시 푸스타트(Fustat)를 건설하고, 9세기에 이집트가 바그다드에 종속하였을 때에는 푸스타트의 북동쪽에 접한 곳에 나중에 이집트의 지배자가 된 아마드 이븐 툴룬이 새로이 카타이(Katai)를 건설하였다.

10세기에 마그레브를 본거지로 하는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를 지배하였을 때 장군 조하르 알루미가 카타이의 북쪽에 새 수도 카히라(Kahira)를 건설하였는데(969), 카히라는 ‘승리’라는 뜻으로 카이로의 어원이 되었다. 이곳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 경제적으로도 다수의 인구를 부양하는 데 적당하였기 때문에 고대부터 도시가 건설된 것이지만 같은 이유로 카히라라는 지명이 되고 나서도 지배자의 변동은 심하였다. 아이유브왕조(1169∼1250) ·맘루크 왕조(1250∼1517)의 지배를 거쳐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통치할 때에는 문화가 정체하였으나, 1798∼1801년 프랑스 점령시대에는 시가가 확장되었고, 영국과 터키의 연합군이 카이로를 프랑스에서 탈환하여 터키의 주권하에 메메드 알리 왕조의 수도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1882년 반(反)터키·반영국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영국군이 진주하고, 이집트의 영국보호령화(1918), 형식적인 독립(1922) 등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1946년까지 카이로를 지배하였다. 오늘날에도 카이로에는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아랍街)와 신시가(이스마일區)로 나뉘며, 신시가에는 정부청사·회사·은행·호텔 등이 있다. 나일강 서쪽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고, 시내에는 옛 성채와 아므르사원(642)·알아즈하르 사원(970)을 비롯하여 많은 이슬람 사원과 궁전 등의 건축물·박물관, 그 밖의 문화시설이 있어 관광자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지하철이 건설되었고, 북서쪽 약 180 km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하여 포트사이드·이스마일리아·수에즈·훌완과는 철도와 국도로 연결되며, 카이로-이스마일리아의 운하 등 나일강과 그 삼각주 지대의 수로에 의한 수운도 발달하였다. 교외의 헬리오폴리스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예로부터 정치·군사·무역·학술·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방적·식품가공 등의 경공업도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철강·조선·철도차량·화학비료 등의 중공업, 석유정제·석유화학공업 등도 발달하여 수에즈의 정유공장과 송유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알아즈하르대학은 970년 설립되었으며 그 밖에 카이로대학(1908년 설립)·아메리카대학(1919년 설립)·아인샴스대학(1950년 설립된 옛 이브라힘파샤대학)의 4개 종합대학 외에도 많은 고등교육기관·조사연구기관이 있다. 아랍 연맹의 본부가 있으며, 아프리카와 아랍의 망명정당 사무소도 설치되어 있어 망명 정치가의 활동이 활발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이로 [Cairo]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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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 피난 성당

이집트에는 전설적인 아기 예수 피난 성당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으며, 이곳의 마타리야 콥트정교회 성당도 그 중의 하나이다.
헤로데의 아기들 학살을 피하여, 아기 예수를 모시고 이집트로 긴 여행을 떠난 성모님과 요셉은 파견된 추격자를 피해 여기저기 숨어 다녔다고 한다.
이 마타리야 콥트 정교회 성당은 아기 예수 일행이 이집트에 올 때와 이스라엘로 갈 때에 두 차례 들렀다고 하는 곳에 세워져 있다. 정문 위쪽에는 라틴어로 ‘이집트 피난 중의 성가정’이라는 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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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이집트의 상징이며 신비에 쌓인 피라미드는 현재 약 35개가 남아 잇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건물인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2700년경에 만들어 졌다.
피라미드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아마도 그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일 것이다.
각 능선이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20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105m 높이의 ‘상승통로’는 완벽한 배역에서 1cm도 벗어나지 않은 놀라운 배열로 미루어 보아,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고, 해시계이고 달력이고, 동시에 천문대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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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스핑크스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서 그 기원은 이집트이며,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를 가지고 있다. 왕자(王者)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인데,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신전이나 왕궁 ·분묘 등에서 그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집트의 기제에 있는 제4왕조(BC 2650년경) 카프레왕(王)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補修)한 흔적이 있다. 전체의 길이 약 70 m, 높이 약 20 m, 얼굴 너비 약 4 m나 되는 거상(巨像)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프레왕의 생전의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 사이에는 투트모세 4세의 석비(石碑)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상의 매’를 나타내는,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스핑크스 [Sphinx]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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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박물관

이집트 5천년의 역사를 집대성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채집의 충실 도는 세계의 어떤 박물관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집트 박물관은 카이로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은 185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프랑스인 이 이집트 학자 오거스트 마리에트 가 당시의 지배자 사이드 파샤에게 유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1,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박물관은 1층은 왕조 연대별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2층은 투탕카멘왕의 황금 마스 크 및 왕의 묘에서 발굴된 매장 품이 전시되어 있다. 소장품의 수는 10만점 이상이지만 전시공간이 부족해 번잡한 인상을 받게 한다. 보고 자 하는 전시물을 찾으려면 방 번호에 따르는 것이 가장 알기 쉽다.
박물관의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는 연못이 있고 상 이집트(지금의 카이로 지역)의 상징 인 파피루스와 하 이집트(지중해 룩소 지역)를 대표하는 로터스가 심어져 있어 상.하 이 집트, 즉 전 이집트를 나타내고 있다.

룩소

룩소는 예전에 테베라고 불리던 곳으로 중왕국, 신왕국 시대에는 수도로서 번영을 구가하였다.
수도로 정해진 것은 중왕국 시대 제12왕조 이후이지만 전성기는 신왕국 시대의 제18∼20대 왕조였다. 중왕국 시대까지는 피라미드 콤플렉스처럼 무덤과 신전, 하안 신전이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왕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왕들의 계곡과 같은 암굴 분묘와 합셉슈트 신전으로 대표되는 신전으로 나뉘어진다. 그리하여 비길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건축물이 그 영화로운 시대의 유적으로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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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논의 거상(멤논)

신왕국 시대 절정기의 아멘호테프 3세의 좌상으로 높이는 21m다.
원래 좌상의 뒤에는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이 있었으나 그 뒤를 이은 왕들이 석재로 사용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그리스 신전 멘논의 것이라고 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 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거상은 로마 지배 시대에 발생한 지진과 한낮의 심한 온도차로 인 해 균열이 생겨 바람이 불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곤 했으나 보수 공사를 해서 지금은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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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계곡

깊숙한 계곡에 위치한 이곳의 무덤은 모두 신왕국 시대에 바위를 뚫어서 만든 암굴 무덤이다.
지표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전실(前室) 등을 거쳐 석관이 놓여 있는 현실(玄室)로 이어진다. 제18왕조의 무덤은 전실에서 현실 사이가 직각으로 꺾여 있는 데 반해 제19왕조 이후 의 무덤은 직선으로 된것이 많다. 가장 볼 만한 곳은 역시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별도로 촬영용 티켓을 구입하면 모든 무덤 내부를 촬영할 수 있다. 그러나 투탕카멘의 무덤에 한해서는 카메라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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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낙 신전(알 카르낙)

카르낙에는 신전이 여러 개 있으나 그중에서도 아몬 대신전은 이집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아몬 신은 원래 작은 부락에 불과하던 테베(현재의 룩소)에서 섬겨지던 신이었다. 그러나 중왕국 시대부터 테베가 수도로 발전함에 따라 태양신 라와 결합하여 국가의 최고신이 된다. 고왕국 시대에는 파라오 자신이 신이었으나 신왕국 시대가 되면서 파라오는 이른바 아몬 신이 비호를 받는 존재로 변한다. 때문에 역대 파라오는 이 아몬신의 신앙의 땅 테베에 신전과 오벨리스크 그리고 신의 동상 등을 기부했으며 그로 인하여 카르낙은 점차 거대해졌다. 특히 엄청나게 큰 기둥이 늘어선 기둥실 앞에 서면 그 거대함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 기둥실은 입구에서 스핑크스 참배길을 따라 제1탑문, 제2탑문을 지나 깊숙한 곳에 있는데 높이 23m와 15m로 2종류의 거대한 기둥이 134개나 늘어서 있어서 장관을 이룬다. 제2탑문 앞에 놓여 잇는 동상은 람세스 2세의 거상이다. 기둥실을 지나 똑바로 앞으로 나아가면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 합센슈트 여왕의 오벨리스크를 지나 투트모스 3세의 축제전으로 이어진다. 기둥실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제 7탑문과 성스러운 연못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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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 신전(마아바드 욱소르)

아몬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늘어선 참배길로 이어져 있다.
매표소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길이 참배길이다. 정면에는 제1탑문이 있는데 예전에는 좌우 양쪽으로 2개의 오벨리스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왼쪽의 오벨리스크만 남아 있으며 오른쪽에 있던 오벨리스크는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놓여 있다. 유럽 각국에는 이집트 각지에서 반출된 오벨리스크가 곳곳에 놓여 있다. 제1탑문 앞에는 람세스 2세의 좌상과 입상이 있으며, 제1탑문을 들어서면 람세스 2세 의 안뜰, 기둥 회랑, 아멘호테프 3세의 안뜰 등으로 이어진다.
신전의 중앙부에는 원래 있던 건물을 부수고 세운 아불 핫자즈 모스크가 있다. 이곳에 서는 매년 라마단이 시작되기 15일 전에 성대한 무리드가 거행된다. 이 무리드에서는 배 나 가마 등이 등장하여 고대 이집트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