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 : 텔아비브
  • 위치 : 중동, 이집트와 레바논 사이의 지중해 경계 지점
  • 면적 : 20,770 평방 KM
  • 정체 : 의회민주주의
  • 종교 : 유대교 75.4%, 이슬람 17.2%, 그리스도교 2.0%, 드루즈 1.6%
  • 인종 : 유대인 76.4% 기타 23.6%
  • 언어 : 히브리어, 아랍어
  • 화폐단위 : 셰켈(ILS)
  • 시차 :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한국 07:00 이스라엘00:00), 여름에는 summer time 실시로 6시간 이곳이 느리다.
예루살렘

어원적으로는 평화의 도시(IR=도시, SHALOM=평화)란 뜻의 예루살렘은 해발800m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도시로 그 역사가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윗왕이 이곳을 유대인의 도읍으로 정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화려한 신전을 건설한 이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예루살렘은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 모두를 매료시키며, 유대인뿐만 아니라 회교도에게 있어서도, 그리스도교인에게 있어서도 성스럽고 그리운 도시다. 아라비아인은 이 도시를 쿠드스(신성한 도시)라고 부른다.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야파이다.
예루살렘은 크게 신시가지(NEW CITY)와 구시가지(OLD CITY)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예루살렘성을 포함한 동쪽의 주요 기독교 성지들은 구시가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구시가 성벽은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 대제가 축조하였다. 둘레 약 4Km의 성벽에는 8개의 문이 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서쪽의 자파문(Jaffa Gate), 새문(New Gate), 가장 아름답게 장식된 북쪽의 다마스커스문(Damascus Gate), 꽃들의 문이라 불리는 헤로데문(Herod’s Gate)이 있다. 예루살렘 동쪽으로 올리브산을 마주하여 사자문(Lion’s Gate, 스테파노 문)과 황금문(Golden Gate, 아름다운 문)이 있는데 이슬람인들은 마지막 심판이 이곳 황금문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어 이곳 가까이에 묻히기를 원한다. 통곡의 벽 가까이 남쪽에는 오물문(Dung Gate)이 있어 과거에 오물을 버릴 때 사용하던 문이며, 그 옆으로 시온문(Zion Gate)이 있다. 가장 번화한 자파문은 옛날에는 화물이 통과하던 항구였다. 시온문은 1889년 노트르담 교회와 그리스도교 지구를 연결하기 위해 세워진 문이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향해 세워졌다고 해서 붙여진 다마스쿠스문은 아랍인들로 항상 붐빈다.

베들레헴

베들레헴(히브리어로 빵의집, 아랍어로 고기의 집)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해발 79m의 언덕에 위치한 인구 3만명의 도시이다. 대부분 주민은 아랍인으로, 올리브나무와 진주조개 껍질로 만든 성물을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팔아 생활한다.
베들레헴은 아주 오래된 도시로 창세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라헬은 이렇게 죽어,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묻혔다(창세 35,18) 또한 룻기에 보면 나오미가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에 정착했다고 하는데(룻기 1,22) 이로써 베들레헴이 다윗 가문의 고장이 되었다. 이곳에는 예수님의 탄생지와 비슷한 석회석 동굴들과 수많은 옛날 집들이 남아 있다.

나자렛

이스라엘의 비옥한 농경지 이즈르엘 평야 가까이에 있는 작은 언덕에 둘러싸인 도시로 성모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곳이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는 이집트 피난 후 요셉과 나자렛으로 돌아와 생활을 시작한다. 예수는 전도활동을 펴시기까지 30년 동안 이곳에서 목수의 아들로 지내셨다.

나자렛에는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부탁으로 마리아의 집터에 교회를 세웠으나 이후 회교도의 점령으로 무수한 붕괴와 재건을 되풀이했다. 17세기부터 비로소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이 나자렛에 사는 것이 허락 되면서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나자렛의 주요 순례지로는 성모영보대성당과 마리아와 요셉이 목공일을 했던 곳에 세워진 성요셉 성당,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유대교의 시나고그에서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메시아 강림에 관한 부분을 낭독하신 회당(시나고그)과 마리아 우물 등이 있다.

에인 카렘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있는 에인 카렘은 예루살렘 근교에서 가장 낮은 지형으로, 그이름은 ‘포도원의 샘’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물이 좋아 많은 농작물이 재배되었다. 1948년까지 아랍인들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이스라엘 이주민들이 정착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사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 살던 곳이고,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이다. 또한 마리아가 요한의 모친이자 그녀의 사촌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루카 1, 39-45)

예리코

예루살렘 동쪽 39km에 위치한 예리코는 고고학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제일 낮은 도시(해면하 250m)다. 성경에서는 이곳을 예리코라고 부르지만, 현지 아랍인들은 ‘아리하’라고 부른다. 해발 750m의 예루살렘에 비해 1200m 낮은 예리코는 덥고 아열대성 기후를 가지고있다. 이지역을 순례하다 보면 급격한 대기압차로 인해 잠시 청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이곳은 각종 과실수(특히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로, 예로부터 ‘방향의 성읍’, 또는 ‘종려나무의 성’이라고 불러왔다. 여름은 매우 덥고 건조하지만 겨울과 봄에는 각종 꽃들이 만발한다.
성경의 역사에서는 B.C. 13세기 경 여호수아가 요르단강을 건넘 후 처음 정복한 땅이며(여호 6장), 예언자 엘리사가 주민들의 간청에 의해 물이 나쁜 샘에 소금을 넣어 물을 되살린 곳이기도 하다(2열왕 2,19). 예리코의 푸른 오아시스의 생명수인 이샘은 역사를 통해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엘리사의 샘’이라고 불렸다.

사해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사해가 있다. 사해 수면은 해저 392m이고, 깊은 곳의 수심은 수면에서 약 400m까지 내려간다. 사해의 길이는 약 200리(7.8km)이고 넓이는 45리(18km)이다.
사해는 갈릴리 바다에서 흘러 내려오는 요르단강과 사해 주위에 있는 와디로부터 물을 받아들이지만 흘러 내려가는 곳은 없다. 사해는 보통 바다 물보다 7-10배나 짜서 쓴맛까지 날 뿐만 아니라 농도가 높아서 물에 들어가면 가라앉지 않고 뜬다. 또한 공기 중 산소 함유량은 인근 지중해 해변보다 10%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사해는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 건강치료를 위하여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다. 사해 주변에는 많은 온천장과 함께 휴양 리조트 시설들이 잘 발달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아라바 바다, 혹은 소금바다라고 부르고 있다. 타락의 도시 소돔이 유황과 불로 멸망한 우 사해의 남쪽 수쪽 수역에 수장되어 있다고 추정되며, 롯의 아내로 불리는 소금기둥이 남아 있다.

쿰란

사해의 서북연안에서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꿈란은 1947년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꿈란 주위의 동굴들에서 기원전 2세기경의 히브리어 성경 사본과 성경 주석서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견된 성경들을 사해 사본 혹은 꿈란 사본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은 에세네파가 기원전 200 ~ 기원후 70년까지 공동생활을 하던 수도원 터로 사용하던 흔적이 있다. 꿈란 주변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말이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이며 나머지는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이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주석, 신학서, 꿈란 공동체의 규율 집들로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놓은 것들이다. 사해 사본은 현존하는 구약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에스델서만을 제외하고는 구약의 모든 책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특별히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사본들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야포

히브리어로 아름답다는 뜻으로, 텔아비브 남쪽에 있는 3600년전의 긴 역사를 가진 지중해의 항구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지중해의 관문이자 이스라엘 지중해 해안평야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항구이다. 또 요나가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버리고 타르시스(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이곳에서 배를 탔다가 혼이 난 곳이기도 하다(요나 1,3). 또한 베드로 사도가 죽은 타비타를 살린 기적을 행한 장소이다(사도 9장-10장).

카이사리아

텔아비브와 하이파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기원전 3세기에 페니키아(시돈)인의 도시가 있던 곳인데, 헤로데가 기원전 1세기에 아테네에 필적할 항구도시로 만들기 위해 건설한 도시로 로마황제 카이사리아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서 카이사리아라 불리워졌다.

이곳은 베드로가 이방인 코르넬리오에게 영세를 베푼 곳(사도 10장)으로 교회가 처음으로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푼 의미 있는 곳이다. 또한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로마로 압송되기 전 2년간 머무신 곳이다(사도 23,23-26,32). 바닷가 위에 세워진 로마 극장은 1961년 철거되고 큰 부분은 보수하여 연주실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