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 : 마드리드
  • 위치 : 유럽 서남부,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남쪽으로는 지중해와 마주하고 있다.
  • 면적 : 505,370 평방 KM
  • 정체 : 입헌군주제
  • 종교 : 로마가톨릭 94%, 기타 6%
  • 인종 : 지중해 및 북유럽인
  • 언어 : 에스파냐어
  • 화폐단위 : 유로
  • 시차 : 한국과의 시차는 8시간 (한국 08:00 스페인00:00), 여름에는 summer time 실시로 7시간 이곳이 느리다.
마드리드

마드리드는 400여년간 에스파냐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유럽 타국가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고지대인 해발 646m에 자리하고 있는 고원도시이다.
1561년 펠리페2세(FelipeⅡ)가 수도를 똘레도(Toledo)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한 이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구시가는 주로 17-18세기에 건설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18세기후반 카를로스 3세(CarlosⅢ) 때 많은 건물(프라도 박물관, 왕궁 등) 및 도로(Paseo del Prado) 등을 건설하게 되어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마드리드의 기후는 맑은 날이 많으며, 고원도시인 까닭으로 한서의 차가 극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무척 더우나 공기가 건조하여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겨울에도 바람이 없는 날이면 큰 추위는 느끼지 않는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초여름이나 초가을이 가장 적합하다.

아빌라(AVILA)

마드리드로부터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인구 약 5만명, 해발 1,128km로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이다. 아빌라라는 이름의 기원은 ‘아빌라(Obila)’, ‘아벨라(Abela)’, ‘아불라(Abula)’ 등으로 불리다가 아빌라(Avila)로 정착하였다.
세계에서 로마식 성벽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곳으로, 알퐁소 6세가 1090년 이슬람족에 대한 방어를 목적으로 건축을 시작했다. 88개의 탑, 9개의 성문, 전장 2,460m의 타원형으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아빌라 전 인구의 99%가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특히 아빌라를 가톨릭 성지로 만든 것은 맨발의 갈멜수녀원을 창설한 성녀 데레사(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대 데레사)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많은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세고비아(SEGOVIA)

마드리드 북서쪽 60km 지점에 있는 과다라마산맥 기슭 해발 1,000m 지점에 있다. BC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하였으며 BC 1세기 말에 로마의 식민시가 되었다. 11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카스티야왕국의 알폰소 10세는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다.
중세에는 양모공업이 번창하였으며, 현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자기와 직물제조가 이루어진다. 도시 곳곳에 로마인이 세운 수도교(水道橋)와 성채 알카사르, 대성당 등 고대와 중세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수도교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때 건설되었으며 1906년까지 고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128개의 2층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길이 813m, 최고 높이 약 30m로서 다듬은 화강암을 끼워 쌓아올렸다. 아치 윗단 니치 부분에는 성인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알카사르는 로마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12세기, 13세기, 19세기에 확장, 복원되었다. 높이 80m의 망루, 궁전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움직이는 다리를 지나 성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에스파냐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불리지만 수많은 전쟁을 치른 요새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성당은 1525∼1768년에 걸쳐 고딕양식으로 건설되었으며 가로 50m, 세로 105m, 신랑 높이 33m의 웅장한 규모이다. 3개의 볼트식 신랑과 익랑, 돔, 중앙후진, 7개의 경당 등이 있다. 1985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알바데또르메스

토르메스 강을 옆에 끼고 있는 조용하고 평온한 마을이지만 지리적,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적이 있다. 그 옛날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의 경계가 되었던 지점이었고, 그로인해 끊임없는 서로의 침입과 대치 상태가 계속 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15세기 경 카를로스 5세와 펠리페 2세 시대의 장군이었던 알바공작이 이곳에 옴으로 더욱 유명, 또한 알바 데 또르메스는 성녀 대 데레사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대 데레사는 8번째 갈멜 수도원을 이곳에 지었고, 그로부터 11년 후 부르고스에서의 마지막 갈멜 수도원을 만든 후 고향 아빌라로 가는 도중 이곳에서 잠시 묵었는데, 워낙 쇠약해진 몸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이곳 알바 데 또르메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죽은 후 그의 무덤에서는 신비스러운 꽃향기가 늘 맴돌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몇 년 후 이상하게 생각한 살라망카 대학의 교수들은 이 현상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정했고, 이 무덤을 파고 조사해 본 결과 그 몸은 썩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다시 몇 년 후에 대 데레사의 심장과 오른팔을 떼어내어 지금은 순례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12사도의 한 사람인 성야고보(에스파냐어로 산티아고)의 순교지로 알려져 있다. 9세기에 에스파냐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에서 그리스도교를 포교한 사도 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별이 나타났다고 믿은 알폰소 2세에 의해 이곳에 성당이 건설되었으며, 아울러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시(市)가 형성되었다. 이후 예루살렘·로마에 이은 유럽 3대 순례지의 하나로서 번영했다. 갈리시아지방 중심도시의 하나로, 옥수수·포도 등을 집산하며, 은세공·칠기 공예·양조·주조·섬유·가구 등의 수공업이 성하다. 12세기에 건설된 성야고보를 모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비롯하여 성 프란치스코회·성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 성당·교회·대학 등 중세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서부 유럽의 메카’라고도 불린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10세기에 사도 야고보(산티아고)의 유해가 발견된 후 이 곳은 세계의 3대 성지의 하나가 되고 유럽에서 가장 큰 순례성당이 세워졌다. 현재의 성당은 1078년에 주교 디에고 페라에스에 의해 기공되어 1128년경 미완성인 채 헌당식을 가졌다. 라틴 십자 플랜의 5랑식 바실리카 건축으로 툴루즈의 생세르낭성당과 비슷한 로마네스크의 순례로 양식을 취한 전형적 성당이다. 좌우의 커다란 종탑 사이에 끼여 있는 모양의 서쪽 정면은 카사스 이 노보아가 설계하여 18세기 중엽에 건조한 것이며, 에스파냐 바로크의 추리게레스크 양식이다. 또한 서쪽 정면 전실의 ‘영광의 문’이라고 불리는 출입문을 장식한 조각군은 12세기 말의 거장 마테오의 작품으로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의 이행을 나타낸 스페인의 채색조각을 대표한다.

부르고스

마드리드 북쪽 약 210km, 아를란손강 유역의 해발고도 800m 고원에 위치하여 천연의 요새를 이룬다. 884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동쪽 전초기지로서 건설되어, 1035년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상업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으나, 1560년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자 쇠퇴하고, 18세기가 되어 다시 발전하였다. 1936년 스페인내전에서는 프랑코 장군의 본거지가 되었다. 11세기경 무어인을 상대로 활약한 전설적 영웅 시드 캄페아도르(엘시드)의 출생·활약지로서 에스파냐 사람이 자랑으로 삼고 있다. 농업 외에 모직물·가죽제품·화학비료 등의 공업이 번창하다. 부르고스대성당 등 문화재·사적도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