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소도시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차례에 걸쳐 성모 마리아가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발현한 곳이다.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 색 허리띠를 두르고 양발 위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모습으로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베르나데트에게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IMMACULADA COUNCEPCIOUN)라고 밝히며, “회개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또 발현 장소에 “성당을 지을 것”과 루르드 샘물의 원천을 가리키며 그 물을 마시며 씻도록 했다.
루르드 성모가 마시고 씻도록 한 샘에서 4000여 건의 치유 현상이 일어났고, 교회가 공식적으로 기적이라고 선포한 것만 해도 지금까지 70건에 달한다.

필수 순례장소
루르드 성모 발현 동굴(Massabielle)

회개 치유 기적의 시작지 : 성모 발현 동굴은 루르드 도심을 가로지르는 가브강가 절벽 한 가운데에 있는데 주민들은 이곳을 마사비엘(massabielle) 이라 부르고 있다. 마사비엘은 루르드 성지 중에서 성모님의 따스한 품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늑한 곳이다.
이 곳은 루르드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회개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시작점이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던 바로 그 장소에는 목격자 성녀 베르나데트의 증언에 따라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 성모상이 서 있다. 베르나데트의 목격 증언에 따르면 루르드에 발현한 성모는 “이 세상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머리에 후광이 빛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색 허리띠를 두르고, 두 손은 가지런히 합장을 한 채 묵주를 오른 팔에 늘어뜨리고, 맨 발 위에 노란 장미가 있었다”고 한다.
성모상 아래에는 ‘QUE SOY ERA IMMACULADA COUNCEPCIOUN'(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이다)라는 말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루르드 성모의 주요 메시지 : 성모 마리아는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이 동굴에서 땔감을 주우러 온 14살의 가난한 소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성인, 1844~1879년)에게 18차례 발현했다. 특히 성모 마리아는 2월 18일 세 번째로 발현해 베르나데트에게 보름간 계속 동굴에 와 줄 것을 부탁하고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프랑스 교회는 이 날을 특별히 기념해 베르나데트 성녀 축일을 선종일인 4월 16일이 아닌 2월 18일로 지내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베르나데트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맞춰라” “당신이 가리킨 곳에 샘을 파 그 샘물을 마시고 씻도록 하고, 이곳에 성당을 지어라”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자신의 단순성을 드러내는 듯 한 이 메시지는 루르드를 찾는 모든 순례자들을 무릎 꿇어 회개하게 하고, 물로써 새로 나게 하고 있다.

기적수 발원지 : 마사비엘은 순례자들이 ‘기적수’라고 하는 샘물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는 아홉 번째 발현 날인 1858년 2월 25일에 베르나데트에게 자신이 가르킨 곳을 파서 그 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씻도록 했다. 베르나데트는 샘을 파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성모 마리아는 마치 우리가 세례 때 물과 성령으로 죄에서 해방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새 몸을 입을 것을 원하신 것을 아닐까? 마사비엘 안으로 들어가면 성모 마리아의 지시로 베르나데트가 손으로 판 샘물의 발원지를 직접 보고 그 물을 마실 수 있다. 유리판을 덮어 잘 보존하고 있는 이 수원지에서 지금도 하루 12만2400리터의 샘물이 샘솟고 있다.

동굴 성당

동굴 성당은 루르드에서 첫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지금은 위 아래 큰 성당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무심코 지나치다 보면 놓치기 십상인 작은 성당이다. 이 성당은 로사리오 성당 지붕격인 황금색 ‘천상모후의 관’ 뒤편,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정문 계단 중앙 교황 초상 아래에 위치해 있다. 1862년 착공해 1866년 5월 19일에 완공됐다. 타르브교구장 로랑스 주교가 주례한 성당 축복식에는 베르나데트도 참례했다.
동굴 성당은 이름 그대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마사비엘 동굴 바로 위에 지어졌다. 제대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기념해 발현 장소 바로 위에 설치했다. 그래서 동굴 성당은 성모 발현 동굴과 함께 ‘루르드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다.
동굴 성당은 성모 마리아의 소박함과 단순성을 묵상하게 하는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숙연해진다. 화려한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3개의 뾰족 아치와 28개의 대리석 기둥이 전부이다. 대리석 기둥도 하단부는 흑색, 상단부는 밝은 미색으로 구분해 멋을 냈을 뿐이다.
성당 내부는 폭 10m, 높이 4.2m, 길이 25m. 신자석도 휠체어 5대가 들어갈 공간과 120명이 앉을 자리가 고작이다. 성모 발현 장소 바로 위에 있는 중앙 제대는 1966년과 1973년 개수됐고, 24시간 내내 성체가 현시돼 있다. 제대 뒤편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안치돼 있다. 한 마디로 오늘날 동굴 성당은 순례자들을 위한 ‘성체 조배 성당’인 셈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대성당

13세기풍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1866년에 착공, 1871년에 완공됐으며 1876년 7월 2일 봉헌됐다. 성모 발현 동굴로 부터 20m 높이의 절벽 꼭대기에 지어졌을 뿐 아니라 세 성당 중 가장 위에 있어서 ‘윗 성당’으로도 불리는 이 성당은 길이 51m, 너비 21m의 대리석 건축물로 종탑 높이만 70m가 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동굴 성당의 분위기와 사뭇 대조적이다. 웅장하고 화려하다. 동굴 성당이 소박한 시골 처녀 같다면 이 성당은 명문가의 귀부인 같은 분위기다.
대성당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15개의 경당이 있다. 각 경당들은 로사리오의 성모, 승리의 성모, 가르멜 산의 성모 등에게 봉헌됐다.
중앙 제대 상단부 3개의 창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주제로, 나머지 23개 창에는 루르드 성모 발현과 성녀 베르나데트의 일생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색유리화가 장식돼 있다. 천정에는 샹들리에들이 매달려 있고, 내벽은 순례자들이 봉헌한 ‘성모 깃발’과 ‘대리석 봉헌판’ ‘유물함 은궤’들로 꾸며져 있다.

로사리오 대성당

로사리오 대성당은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 윗 성당들 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지어진 성당이다. 이 성당은 돔이 있는 신 비잔틴 양식으로 1881년 착공, 1889년에 완공된 후 1901년 10월 6일 봉헌됐다.
로사리오 대성당은 많은 수의 순례자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설계돼 신자석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성당 크기가 길이 52m, 너비 48m에 불과하지만 200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
로사리오 대성당의 외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와 밀알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돔 위에는 황금색 ‘천상 모후의 관’이 모셔져 있다.
“성모님이 항상 묵주를 들고 나타나셨다”는 베르나데트의 증언을 토대로 이 성당은 묵주기도 환희ㆍ고통ㆍ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는 15개 경당으로 꾸며져 있다. 각 경당마다 묵주기도 각 신비의 주제를 나타내는 모자이크화를 장식해 놓았다.

비오 10세 대성당

루르드 성모 발현 동굴 위에 세워진 성당들 외에 루르드에는 대성당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루르드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1958년 3월 25일 봉헌한 ‘성 비오 10세 대성당’이다. 성당 봉헌식은 그해 10월에 교황 요한 23세로 선출된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추기경이 주례했다.
프랑스 유명 건축 설계가들인 피에르 팽사드, 안드레 르 도네, 피에르 바고가 공동 설계한 성 비오 10세 대성당은 노출 콘크리트 양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물고기 모양으로 설계됐으며 내부엔 아무런 지주나 기둥 없이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길이 201m, 폭 81m인 이 성당은 2만70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 면에서 거대하다.
성 비오 10세 대성당은 루드르 성지의 중심인 마사비엘 지역 정면 맞은 편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지 광장에 서있는 루르드 성모상 뒷편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성지에 막상 가보면 눈 앞에 잔디밭만 펼쳐져 있고 성당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성 비오 10세 대성당은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대성당 입구는 루르드 성지 정문 아래에 있는 안내소 오른편 공중전화 부스 옆 내리막 길에 있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려면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한다. 마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기 위해선 반드시 죽음을 통과해야 하듯 성 비오 10세 성당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터널 길은 순례자에게 ‘회개와 정화’를 요구하는 듯하다. 대성당은 성당 한 가운데에 있는 대리석 제단 외에 온통 콘크리트 시멘트 뿐이다. 화려한 것이라곤 성가대석에 있는 소형 파이프 오르간 뿐이다. 심지어 계단도 없다. 많은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에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고 싶다”고 말할 만큼 가난한 삶을 사랑했던 성 비오 10세 교황을 드러내듯 대성당 내부는 너무나 단순하다.
대성당에선 미사와 ‘성체강복’예식이 거행된다. 특히 부활대축일부터 10월 셋째 주 토요일까지 순례 시즌에는 매일 오후 5시에 이곳에서 성체강복 예식이 거행된다. 성체강복은 ‘성체행렬’로 시작된다. 성모 발현지인 마사비엘 동굴이나 강 건너 성녀 베르나데트 성당에서 출발하는 성체행렬은 제일 먼저 봉사자단과 기수단, 환자들, 복사단, 사제단, 성체 순으로 거동한다.
루르드 광장을 가로질러 성 비오 10세 대성당에 성체행렬단이 들어오면 트럼펫과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중앙 제대에 성체가 현시되면 곧바로 성체강복 예식으로 들어간다. 성광 안에 현시된 성체를 중심으로 사방에 사제단과 환자들이 자리한다. 환자들 주위에는 멜빵을 한 건장한 봉사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루르드 성지에서 가장 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나는 때가 영성체와 성체강복, 침수 때라고 한다. 그래서 멜빵을 한 봉사자들이 환자 주위에 있는 것은 치유 기적이 일어났을 때 그 기적을 보기 위해 갑자기 몰려드는 인파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성체강복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독어, 이탈리아어 등 다국적 언어로 진행된다. 제대 멀리에 있는 순례자들을 위해 대형 모니터가 설치돼 성체강복 예식을 생중계한다.

베르나데트 기념관

베르나데트 기념관은 성 비오 10세 대성당 입구 맞은 편으로 나가면 바로 있다. 기념관에는 성녀 베르나데트 유품과 사진이 전시돼 있다. 특히 베르나데트가 수녀원에 입회한 후 직접 만든 상본과 장백의, 그리고 성녀가 수도생활 내내 가슴 속에 품고 다녔던 십자가와 다 헤진 신발 등은 성녀의 소박한 삶을 드러내 보여준다. 베르나데트가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믿음 뿐이지 세상의 권세와 명예가 아님을 유물이 묵시적으로 증언한다.
베르나데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성모 마리아와 교회에 순명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성모 발현 목격자”라고 떠들지 않고, 수도자로서 은거의 삶을 살았다. 성모 마리아를 직접 본 이로 높은 자리에 있지 않고 평생을 바느질 소임을 했다. 베르나데트 기념관은 성녀의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한 소박한 삶뿐 아니라 진정으로 교회가 인준하는 성모 성지는 어떠한 곳인지를 보여주는 ‘증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루르드 성모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돌봐주심으로써 구원의 희망을 안겨주는 자애로우신 어머니”라며 루르드 성지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십자가의 길

1912년 1,530m의 거리를 두고 언덕 위에 십자가의 길이 만들어졌다. 각 처마다 쇠로 조각된 2m 높이의 상들이 있다. 누구나 이 언덕의 십자가의 길을 방문하면서 대사를 얻고 은총의 상태에서 거룩한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할 수 있다. 순례객들의 편의를 위해 왼쪽에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또 한편 병자 순례단을 위한 십자가의 길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것은 가브강을 따라 목욕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1963년 3월 25일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십자가의 길은 합당한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시켜 준다.

놓쳐서는 안 될 순례 프로그램
성지 프로그램

▲침수 : 침수는 평일에는 오전 9~11시, 오후 2시30분~4시, 주일과 휴일에는 오후 2시~4시 하루 두 차례 있다. 침수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든 짧든 시간이 되면 문을 닫는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순례자들은 묵주기도를 바친다. 침수는 남녀가 구별돼 이뤄지며 장애인 우선으로 진행된다. 봉사자 안내로 대기실에 들어서면 “속옷 외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한다. 순서가 되면 안내에 따라 침수실로 들어간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물 안에 들어가면 봉사자가 “정면에 있는 성모상을 보고 기도하라”고 한다. 기도를 마친 후 성호를 그으면 봉사자들이 양편에서 몸을 뒤로 눕혀 침수시킨다. 물에서 나온 후 수건으로 몸을 닦지 않고 옷을 입고 그대로 말린다. 신기하게도 금방 마른다.

▲성모 발현 동굴 미사 : 성모 발현 동굴 미사는 매 시간 이어진다. 미사 후 동굴 주위를 돌며 기도하고, 전례 때 사용할 초를 봉헌하는 것도 좋을 듯.

▲성체강복 :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루르드 성 비오 10세 성당에서 ‘성체강복’예식이 거행된다. 순례자들과 병자, 세계 각국에서 모여온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다함께 참례하는 장엄한 예식이다.

▲야간 묵주기도 행렬 : 밤 8시 30분이 되면 성모 발현 동굴에서 출발해 성지 광장을 지나 로사리오 대성당 앞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는 예식이 거행된다. 성당 입구에는 성가대와 각국 대표들이 나와 묵주기도를 선창하고, 순례자들은 촛불을 들고 다함께 라틴말과 각국 언어로 기도한다.
기도할 것을 당부한 루르드 성모의 권유에 따라 시작된 이 야간 묵주기도는 회개와 감동,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는 단순하지만 장엄한 예식이다.- 평화신문 발췌-

그 밖의 순례 장소
볼리 방앗간(Le Moulin De Boly)

베르나데트 성녀의 생가로써 성녀는 1844년 성녀는 이집에서 태어나 10살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옛 감방(Le Cachot)

방앗간이 빚으로 넘어가고 베르나데트의 가족들이 모두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1858년 2월 11일 베르나데트가 나무를 주우러 나갔던 곳이 이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