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신부님 피정 및 성지순례 안내

작성자
진주여행사
작성일
2018-03-21 13:18
조회
698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안녕하세요,

2018년 6월 '요조 조브코 신부님 피정 및 발칸반도,메주고리예 성지순례' 안내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내용 참고해 주십시오.

1. 피정 및 순례 날짜
i) 2018년 6월 1일 ~ 6월 27일 (27일간):피정, 크로아티아, 메주고리예 순례
ii) 2018년 6월 2일~ 6월 16일 (15일간):피정, 메주고리예 순례

2. 요조신부님 피정 장소 - 크로아티아 공화국 드브로브니크 부속 섬 바디야
순례지 - 발칸반도(정확한 순례지는 여행 안내 일정표를 확인해주세요.), 메주고리예

*바디야 섬에 대하여*

바디아섬은 크로아티아의 남부지역인 드브로브닉 뻴리예삭의 반도와 꼬루출라 섬 사이에 위치해 있다. 꼬르출라 쪽을 향해 있는 바디아 섬 안에는 1400년대 지어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1906년부터 1941년까지 크로아티아 남부 지역의 문화적이고 교육적이며,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
섬 내부는 지금까지도 초목이 무성하고 사슴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1949년 공산군인들이 섬에 들어오면서 부터 작은형제회 회원들은 쫓겨났고, 수도원은 파괴되었다.
공산정권이 강제 압수해 사용하면서 단 한번도 보수공사를 하지 않은채 2004년 크로아티아의 독립과 함께 바디아는 다시 작은형제회 소유로 돌아갔다.

바디아라는 이름은 아바티아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으며 가장 먼저 섬에 자리를 잡은 베네딕토 수도회 회원들이 10세기에 자신들의 수도원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1394년 베네딕토 수도회는 꼬루출라 연합 총회의 결정에 따라 바디아 섬을 작은형제회에 이임하였다.
1938년 총회는 작은형제회에 바디아 섬을 위임함으로써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에 의해 크로아티아 남부지역의 거대한 문화적이고 영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고딕 –르네상스 스타일의 대단히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세우고 성당 안에는 오래되고, 귀중하며 신앙심이 묻어나는 십자고상과 동정마리아의 이콘 등 오랜기간 동안 공경해온 성물들을 모셔져 있다. 1483년 꼬루출라의 건축가들에 의해 고딕-르네상스식 성당을 건축하여 성모승천께 봉헌되었다. 성당은 둥근 타원형 천장 모양의 또 다른 회랑과 문설주의 화려한 문양을 새겨 넣었다. 중앙제대는 여러 번 보수를 하였지만 초기에는 프란치스꼬회 수도사제인 아구스티노 다 드라지니치 블라또 꼬루출라와 베니스의 건축가인 안드레아 띠랄리아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제대 상층부에는 그리스도를 중앙에 모신 복음사가들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비잔틴 양식의 성모님 이콘은 1571년 터키 해군으로부터 꼬루출라를 지켜낸 기적의 성모님으로 공경 받고 있다. 이 이콘은 지금까지도 꼬루출라의 주교좌 성당에 모셔져 거룩한 성화로 공경받고 있다.
고딕양식의 귀중한 십자고상은 1457년 스플릿의 조각가 유라이 뻬뜨로비치의 작품으로써 1729년에서 1763년까지 이 십자가를 모시기 위해 베니스의 건축가 조르죠 맛싸리아가 설계하였고, 꼬루출라의 인부들이 소성당을 지었다. 1763년 7월 25일 드디어 거룩한 십자고상은 소성당에 모셔졌다. 하지만 현재 이 귀중한 십자고상은 오레비치(Orebic)에 있는 천사의 성모 성당에 모셔져 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수도원 내부의 고딕-르네상스식 회랑은 사각형 모양으로 대단히 아름답게 설계되어 1477년 완공되었다. 둥근 타원형의 십자모양의 천장이 회랑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아치와 기둥들은 꽃과 나뭇잎 등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서 크로아티아의 해변 지역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회랑으로 이름나게 되었다.
1906년부터 수도원의 일부를 학교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1909년에는 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22년부터 1927년 수도원은 고아원과 공원, 초등학교와 중학교, 세탁장 등을 설립하면서 더욱 확장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바디아는 문화적이고 종교적으로 가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제 2차 대전이 끝난 뒤인 1949년 1월 12일 공산정권은 섬을 빼앗고 수도자들을 쫓아내면서 모든 재산을 압수하였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의 다른 지역처럼 프란치스꼬 회원들은 공산정권에 굴복하지 않은 대가로 잔인하게 처형당하였다.
바디아 섬 내부의 모든 시설들은 구 공산 유고슬라비아의 무력 정권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성당은 동물 사육장으로, 수도원은 감옥과 군부대의 막사, 여관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대부분은 스포츠 활동을 위한 선수촌으로 활용되었다.
이 기간 동안 섬의 모든 기간시설들은 보수되거나 재건축되지 않은 채 공산정권에 의해 55년간 사용되어 오다가 2004년 크로아티아의 독립과 새 정부 출범으로 인해 섬은 다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에게 환원되었다.

요조 조브코 신부 (Fr. Jozo Zovko)
늘 민중과 함께 해오던 프란치스칸들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일어났던 잔인했던 전쟁으로 인해 발생된 전쟁고아들과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장애자들을 돌보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정들을 적극 돕기 시작하였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요조 조브코신부이다. 그는 작은형제회 소속 수도회 사제이며 1967년 수품을 받고 1981년 메주고리예 본당 사제를 역임하였다. 당시에 발현증인들이 첫 발현을 목격했고, 요조신부는 본당 사제로서 발현증인들을 보호하는데에 힘쓰다 공산당에 끌려가 억류되고 고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1992년 요조신부는 협조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시로키 브리엑 (Siroki Brijeg)에 고아들과 미망인들을 위한 원조협회를 구성하였고, 얼마 뒤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재활센터를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요조 신부는 10년 동안 야끌리얀 섬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 고아들과 미망인들을 위한 하계 교육 프로그램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요조 조브코신부의 자선 활동으로 인해 많은 어린이들과 미망인들, 전쟁 상이군인들과 장애자들이 평화와 미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요조신부와 함께 할 때 더이상의 고독이나 소외를 느끼지 않고 오히려 요조신부와 함께 하면서 가족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야끌리얀 섬에 대한 10년 동안의 무상활용시기가 끝난 뒤 작은형제회의 크로아티아의 관구는 요조신부가 설립한 자선단체(Medunarodno Kumstvo Djetetu Herceg-Bosne)와 작은형제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관구와 협력하에 섬을 기증하였다. 수도원과 섬전체 복구사업은 현재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보스니아의 성모승천 관구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해외 양부모협회 공동 감독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바디야 섬의 중요성*
섬, 바디아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수세기 동안 프란치스꼬회 회원들의 기도와 희생, 축복으로 섬을 귀하게 만들었고 섬의 유일하고도 멋진 수도원을 건설하였을 뿐아니라 긴 해변가를 따라 건설된 이 수도원은 하느님의 현존과 권능의 진정한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한 프란치스꼬회 회원들의 기도와 신앙은 1949년 섬으로 들이닥쳐 성당과 수도원내부를 모독하고 파괴하던 공산군인들의 오만함과 악의보다도 강했다. 수도자들은 섬으로부터 쫓겨났고, 강제이주 당했으며 건물들은 파괴되었고 성소라는 장소의 특이성이 무시된 채 군인들의 막사로 사용되었지만 크로아티아인들의 신앙은 훨씬 더 강하게 드러났다. 크로아티아 국민은 기도안에서 항구하고 자신의 생명의 위험까지도 감수하면서 신앙을 지켜왔으며 50년 동안의 공산치하 이후 진리는 크로아티아를 다시 밝게 비추게 되었다.
공산정권은 무너지고 2004년 바디아섬 전체는 다시 프란치스꼬회로 돌아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섬의 영화로웠던 옛모습을 되돌리는 것은 중요하다. 꼭 예술적인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곳의 종교적인 복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바디아 섬을 복원하는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교회와 하느님을 원하지 않았던 이들을 대항에 손에 묵주를 들고 저항하던 이들의 신앙에 힘을 실어 준다는 의미가 된다. 순수한 사람들의 믿음이 우리의 무관심과 나약한 우리 믿음 때문에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하자. 우리를 억압하는 공산정권은 사라졌고 자유를 얻었지만 현대 우리는 신앙을 잊어가고 있으며, 카톨릭 신자라는 정체성마저도 파괴하고 살아가고 있는 시대다.
바디아는 예수님께서 프란치스꼬 성인에게 하셨던 말씀을 이제 우리가 받아드릴 기를 주고 있다. “성당을 다시 세우도록 도와다오.”
오랜 세기 동안 수도원은 하느님의 집이었고, 재능 있고 힘이 넘치는 장정들이 하나씩 돌을 쌓아 올린 성당, 이 섬에 살고 있었던 학업에 정진하던 젊은이들과 겸손한 수도자들의 기도와 찬가들이 어우러진 모든 교회의 신비체의 결정체였다. 그런데 50년동안 이런 모든 예술적 아름다움이 배인 장소의 가치를 알아 볼 수 있는 심미안도 마음도 지니지 못했던 무신론자들에게 짓밟히고 하느님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파괴만을 일삼았던 무신론자의 만행이 저질러졌다. 이곳 수도원은 프란체스꼬 회원들과 여러 나라 은인들의 도움으로 13세기의 모습 그대로 재건되었고 피정센터로 사용되고 있다.